아시아 금융 위기 (1997–1998)
1997년에 도미노처럼 번진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시아, 싱가포르 등의 금융 위기를 의미한다. 표면적으로는 글로벌 자본 시장의 상호 의존성과 국제 통화 기구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완벽한 예이며 드러나는 위기의 원인으로는 불투명한 대출 관행, 부풀려진 무역 적자 및 미성숙한 자본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적절한 타이밍을 가지고 합쳐지면 주요 지역 시장이 무력화되고 가치가 있는 통화가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평가절하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었다.
1997년까지 국제 금융 투자자들은 부동산 개발과 국내 주식에 초점을 맞춰 아시아 투자 전망에 점점 더 매력을 느꼈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한국과 같은 국가의 생산 개선으로 경제 성장률이 상승하면서 외국인 투자 자본이 유입되었다. 그 대표적인 국가이자 금융 위기의 진원지라고 지목되는 국가가 태국이다. 태국은 1988년에 13%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이후에 더 강력한 경제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추가적인 대출 지원과 미국 달러에 대한 고정 환율제를 사용했었다. 그러나 1997년 7월 2일 태국은 밧트의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외환 시장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도록 정책을 변경한다. 그러나 이미 1997년 5월부터 엄청난 환율 공격을 받고 있던 터라 이 결정은 바트가 50% 이상의 가치 하락을 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인도네시아 루피아의 변동폭 확대를 이끌어 인도네시아 역시 금융당국이 컨트롤 불능의 상태로 내몰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실 1997 년 초부터 각국 정부의 국제 적자 처리가 점점 어려워지고 대출 관행이 경제 인프라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고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이코노미스트들은 태국의 경상 수지 적자가 1996 년 147 억 달러로 급증했는데 이는 국내 총생산의 8%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드러나지 않는 대출 관행은 심각한 위험 요소였다. 인도네시아 역시 9억 달러가 넘는 경상 수지 흑자와 200억 달러가 넘는 외환 보유고를 가지고 있어 외형적으로는 견실한 경제 구조였지만 많은 기업들이 미국의 달러를 차입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루피아가 달러 대비 강세일 때는 강력한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지만 통화가치가 하락할 때는 그만큼 리스크를 가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루피아는 이전 최고치인 12,950에서 달러 대비 무려 228 % 하락했다. 한국의 기업들 역시 인맥과 로비로 통해 부실 대출이 국내 총생산의 7.5%까지 치솟는 도덕적 해이를 보였다. 많은 경제적 모순과 문제들이 그나마 지속적인 경제 성장률과 달러 대비 자국 통화의 강세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의 경제는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했었지만 금융의 위기를 맞이했고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통화의 문제였다. 중앙은행은 안정적인 경제의 펀드멘탈을 상실되었을 때 시장의 투기 세력 앞에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잘 보여 주었다. IMF의 구제 금융과 구조 조정 등의 엄격한 과정을 걸치면서 동남아시아는 한때 세계 산업화된 경제의 두드러진 위상을 다시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 트라우마는 강렬하다. 그들은 언제나 국제 투기꾼들이 그들의 통화를 다시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그래서 외환보유고에 늘 집착하며 국제 금융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유로화의 출범 (2002)
유로화의 도입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통화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1999 년 1 월 1 일에 전자 거래 통화로 공식 출범한 유로화는 유럽 통화 통합 (EMU)의 초기 11 개 회원국으로부터 시작하였다. 2002년 1월 1일부터 법정 통화로서 정식 주화와 지폐를 발행하였으며 참여국도 19개국의 유럽 연합 가입국과 9개의 비 유럽 연합국으로 확대하여 거대한 유로존을 형성하고 있다.
유로화의 출범은 상당한 장점들과 몇 가지의 단점들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장점들로는 첫째 유로 지역 내에서 환율 변동을 제거하여 안정적인 거래 환경을 제공하며 거래 비용을 감소시킨다. 둘째는 소비자와 기업이 국가 간 가격을 보다 쉽게 비교할 수 있으므로 가격이 투명해지고 이는 비즈니스의 투명성을 향상해 경쟁력의 증가로 이어진다. 셋째는 거대한 단일 통화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이며 경제의 규모가 주는 안정성 덕분에 유럽 중앙은행 (ECB)은 신뢰도가 높아져 낮은 금리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
반대로 유로화로 인한 한계도 존재한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유로를 채택함으로써 국가가 본질적으로 독립적인 통화 정책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각 국가는 점점 더 재정 정책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자국의 독립된 통화 정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재정 정책의 한계가 분명해진다. 두 번째는 역설적이지만 큰 규모가 주는 안정성의 다른 면이 효율성의 문제이다. 특히 이 문제는 유로화 출범 초기에 인플레이션 관리와 통화 관리에서 많이 제기되었으며 이후 2010년 그리스 발 재정위기 때 그 대처와 조율에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0주년을 넘긴 유로화는 국제 결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4.1%로 미국 달러화의 39.6%와 비슷한 하며 그 경제 규모도 1999년의 6조 5000억 유로로 시작하여 2018년 11조 2000억 유로를 달성했다. 물론 여전히 많은 학자들은 유로화 앞에 놓여 있는 갖가지 문제들을 지적한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펜데믹 상황에서 유럽 연합이 “팬데믹 본드”로 향후 5년 동안 9천억 유로 발행을 합의하는 저력을 보임으로 유로존의 통화 공동체 의식과 달러의 위험에 대비하는 국제 통화의 대안으로써 확실한 위상을 보여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였다.
금융위기와 현대 통화 이론(MMT) (2008)
2008년의 금융위기는 우리에게 각인된 가장 최근의 가장 비극적인 금융위기였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학자들은 이때의 상황을 연구하며 경제 위기 상황의 원인과 대처 그리고 예측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경제학을 공부하거나 애널리스트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아님으로 간단하게 금융위기의 배경과 더불어서 이 사건이 Forex 시장에 주었던 충격과 변화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2008년의 금융위기의 시작은 1990년대 닷컴 버블(Dot Com Bubble)과 2000년 911 테러로 비롯된 디플레이션(deflation)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저금리 정책에서부터 시작하였다. 미국인들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안정된 직장을 얻는다고 할 때 주어지는 두 개의 큰 변화가 있다. 그것은 보험과 주택이다. 그런데 이때에 가장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부동산 정책을 일환으로 주택융자금리를 현저히 낮추었다. 수요는 증가했고 가격은 상승했다. 문제는 구매자들이 주택을 구입할 만큼의 안정적인 수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3년까지 기준금리를 6.5%에서 1%까지 인하함으로 엄청난 부실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투자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주택담보 대출금을 기반으로 하는 금융상품으로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 Backed Security)을 발행하고 투기자본과 헤지펀드들은 다시금 이 금융상품을 재가공한 부채 담보증권 같은 파생 상품들을 무분별하게 판매했다. 엄청난 파생 상품들이 폭탄 돌리기로 돌아갔지만 신용평가사들이나 금융당국에서는 감독을 하기보다는 높은 신용등급을 제공하고 시장에 버블을 양산했다. 이것은 급격하게 모기지론에서 비롯된 주택시장의 부실이 금융시장의 전반에 이르기까지 부실화시켰다. 2006년에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나 IMF에서는 미국 경제의 이상 과열, 그리고 신용 파생 시장과 주택 시장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벤 버냉키(Ben Bernanke) 연준의 의장은 통제를 자신했고 거대한 시장에 대한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고 금융회사들도 멈출 줄 몰랐다. 최후의 폭탄인 높은 위험도와 높은 이익률을 자랑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에 이르러서 시장은 급 반전을 가져와 주택 가격은 하락하고 그 위에 세웠던 파생상품들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달콤한 시간은 가고 남겨진 후유증은 아주 가혹했다. 2007년도에 미국의 가계부채는 주택, 신용카드, 기타 부문을 합해 13.8조 달러였고 금융기업부채는 16.0조 달러, 비금융기업부채는 10.6조 달러, 정부 부채는 7.3조 달러로 총부채는 무려 47.7조 달러에 달했다. 이는 GDP 13.8조 달러의 무려 373%에 달하는 액수였다.
이런 금융 위기는 Forex 시장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변동성을 불러오는 것은 당연했고 엄청난 외환 거래 비용을 발생시켰다. 변동성이 클수록 포지션을 보유하는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시장의 유동성 공급자들은 넓은 스프레드로 이런 위험을 만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8년 3분기에는 주요 통화 쌍에서는 4배 정도의 스프레드 확대가 있었고 특정 통화는 400%까지 스프레드가 확장되었다. 심지어 특정한 타이밍에는 아예 거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금융 위기 전 | 금융 위기 후 | |||
스팟 | 3개월 스왑 | 스팟 | 3개월 스왑 | |
EUR/USD | 1 | 0.2 | 5 | 10 |
GBP/USD | 3 | 0.3 | 12 | 12 |
USD/JPY | 3 | 0.2 | 12 | 10 |
AUD/USD | 4 | 0.4 | 16 | 15 |
USD/CAD | 4 | 0.4 | 20 | 20 |
USD/CAD | 4 | 0.3 | 20 | 30 |
NZD/USD | 8 | 0.5 | 40 | 10 |
Source:voxeu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2008년에 외환시장에서 거대 은행들은 비정상적인 통화의 거래와 위험의 전가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반대로 은행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거래 당사자들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느라 소극적 거래를 하였다.
금융 위기상황에서 정책 당국의 대응도 유동성을 낮추고 비은행 통화 거래는 그 위험과 비용을 높이도록 하였기에 트레이더들 뿐 아니라 각 기관과 기업들은 환리스크에 직접 직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2008년 금융 위기는 Forex 시장의 대부분의 거래자들에게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부정적 영향의 두 가지는 외환 투자의 위험도와 비용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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