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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x의 역사 이해 (1)

Forex 알아가기

by T., in Forex 2022. 8. 4.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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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x 트레이딩을 위해 우리는 경제 학자가 될 필요도 없고 역사 학자가 될 필요도 없다. 실제 전문 트레이더들 중에 경제를 전공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통계도 있다. 다만 어떻게 이 Forex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거대한 시장으로 변해갔는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화폐 시장에서 금본위제에서 출발한 것은 1880년이며 이후로 줄곧 원칙은 절대적인 기준으로 지켜져 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는 중앙 은행을 활용하여 금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지폐를 발행해야 했다. 그러므로 개념적으로 지폐는 언제든지 금으로 교환될 수 있는 증서이기에 그 발행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지폐를 발권하는 정부나 은행들은 자신들의 발행하는 지폐가 준비된 금의 수량에 한정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착안하여 발행 제한의 의식이 무디어져 갔다. 지폐의 발행은 곧 막대한 부의 창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화폐는 통제 불능 상태로 팽창하여 엄청난 인플레이션 수준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었고 이는 종종 심각한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특히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은 분쟁의 양측에 엄청난 정부 지출을 발생함으로 화폐의 통제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의 승자인 미국과 유럽은 큰 전쟁으로 이어진 불안정한 통화 정책을 모색하고 국가간에 보다 강력한 통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필요성에서 브레톤 우즈 (Bretton Woods) 협정을 이끌어냈다. 이 협정은 달러의 등장이고 달러의 등장은 국제 통화의 양과 유통에 있어 현대적 개념의 출발이다. Forex 시장은 1970년대 자율 환율제 도입으로부터 시작되어 시장의 거래를 통해 가격이 결정되도록 하기 시작하였기에 브레튼 우즈 협정은 그 시작점이라 할 수도 있다.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협정 (1944)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 경제를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체제를 필요로 하였다. 이를 위해 1944년 7월, 44개국 대표들을 뉴햄프셔 주 브레튼 우즈로 불렀다. 이 모임은 기본적으로 국제 경제의 불안정이 전쟁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전후 세계 경제 질서의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참여국들은 여기에서 미국의 주도하에 중요한 세 가지 합의를 이끌어낸다. 첫째는 공정 무역과 국제 경제 조화를 촉진하기 위해 주요 국제기구들을 구성한다. 둘째는 통화간 고정 환율을 실행한다. 셋째는 금과 미국 달러 간의 고정된 교환 비율 (온스당 35달러)을 확정하고 다른 국가들은 대외 준비금으로 금 대신 달러를 보유하기로 한다.

 

Bretton Woods

 

미국은 이런 합의를 통해 역사적인 두 가지 목표를 이룩한다. 그것은 금융의 축을 영국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월스트리트에서 워싱턴(재무부)으로 가져오는 것과 미국 달러 위상을 기축통화로 만드는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탄생 (Free Market Capitalism) (1971)

1950~1960년대에 세계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유럽과 일본은 경제 성장과 건전한 통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자국의 통화 가치들을 확보해 갔다. 그러나 미국은 국제 수지의 지속적 적자와 달러의 과대평가로 인해 달러의 구매력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자연스럽게 각 국 정부는 달러의 보유보다는 금을 보유하고자 보유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려는 요구를 미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그 요구들을 억제했지만 결국 한계에 다다르고 만다.

 

1971 년 8 월 15 일 닉슨은 공식적으로 미국은 금 태환을 중지한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미 1968년에 세계 지급준비금을 통한 특별 인출권 같은 개념으로 금 태환에 대한 변화를 시도해왔다. 그러나 닉슨의 이 선언이야 말로 Bretton Woods 시스템에 단번에 종말을 선언하는 일이었다.이후 국제통화제도는 현재와 같은 변동환율제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금융에 대한 핵심 축은 미국 정부에서 민간 영역으로 다시 옮겨 가게 된다.

닉슨과 그의 주위에 많은 경제 학자들은 플레튼 우드 체제를 불가항력적으로 무력화했지만 자유 시장이 공정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통화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오히려 국제 무역과 투자가 붕괴할 것이라 믿었던 그들은 금의 충분한 보유 없이도 금 본위제의 근간을 지키려고 스미소니언 협정 (smithsonian Agreements)를 1971년 12월 타결한다. 이것은 온스당 달러 가격을 38.02까지 평가 절하하고 조정폭도 2.25%까지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바보가 아니었다. 지속적인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로 금은 온스당 215불까지 상승했고 조종폭이였던  2.25%는 여지없이 깨어졌다.  결국 1972년 2월에는 외환시장의 폐쇄로까지 이어졌다.

 

분명히 미국이 지탱해오던 경제 질서의 심각한 위기이고 그 한계에 대한 인정처럼 보였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닉스의 선언 이후에 미국은 더 막강한 세계 통화 패권을 갖게 되게 된다. 이 패권이야 말로 통제되지 않고 제한되지 않는 미국의 재정정책을 가능하게 하고 세계 통화 질서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1973 년 3 월에 재개된 외환 시장에서는 스미소니언 협정(smithsonian Agreements)이 무력화됨으로 미국 달러의 가치는 고정된 상품과 환율이 아닌 전적으로 시장에 의해 결정되기 시작하면서 국제 거래에 최적화된 통화로의 빠른 변화를 시도한다. 미국 정부에 의한 통화의 역할과 가치부여보다 시장에서 국제 간 거래의 역할이 살아나면서 국제 무역에 참여하는 투기자들은 달러에 엄청난 유동성과 지속적인 역할과 성장력을 부여하게 된다.

 

플라자 합의 (Plaza Accord) (1985)

20 세기를 특징짓는 모든 다양한 환율 규제 메커니즘 (금 표준, Bretton Woods 표준 및 Smithsonian 계약)이 사라진 후 통화 시장은 사실상 규제가 없었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신화적인 ‘보이지 않는 손’인 수요와 공급을 통해 경제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미국의 대외 수지 불균형과 재정적자로 이어지며 미국 경제의 정상적인 시장이 통제의 한계에 부딪히게 만든다. 시장의 자율성이 주는 힘과 정치 경제 구조에서 비롯되는 파열음 사이의 균형은 20 세기 내내 통화 시장을 괴롭혔던 것이고,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결정적인 해결책이 없었다.

 

Five Financial Officials at the Plaza Hotel in 1985

 

결국 미국은 국내 총생산의 3.5%에 달하는 경상수지 적자를 감소하고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1985년에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미국 등 세계 주요 경제국의 재무부 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일종의 외교 협정을 마련하기 위해 뉴욕시에 소집했다.목표는 달러화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엔화와 마르크화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미국은 다자간 개입을 조율을 통해 그들의 목표를 관철하도록 설득했으며 1985 년 9 월 22 일에 각 국가는 경제 정책을 변경하고 달러를 낮추기 위해 필요에 따라 통화 시장에 개입하기로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재정 적자를 줄이고 금리를 낮추기로 했다.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은 모두 금리 인상에 동의했다. 특히 독일은 감세를 도입하고 일본은 엔화 가치가 일본 경제의 성장을 충분히 반영하기로 했다.

 

다자간 개입의 효과는 즉시 나타나 2 년 만에 달러는 독일 마르크 (DEM)와 엔화 (JPY) 대비 각각 46%와 50% 하락한다. 미국 경제는 훨씬 더 수출 지향적이 되었고 독일과 일본과 같은 다른 선진국이 수입 대상국이 되었다. 초기에는 다양한 보호주의 정책은 경상 수지 적자 역시 점진적으로 해결되었다. 미국은 환율은 원칙적으로 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은 불충분하여 중앙은행의 역할을 해야 하고 그것은 세계 중앙은행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장은 미국의 의도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달러화의 하락은 미국 정부의 기준과는 달러의 하락은 지속되었고 환율은 불안정해져 갔다. 결국 1987년에는 달러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선진 6개국이 루브르 합의(Louvre Accord)가 생겨 났다. 

 

루브르 합의 (Louvre Accord) (1987)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주요 선진국가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참석하여 합의한 내용을 루브르 합의라고 한다. 여기에는 재정 적자를 축소, 수요 촉진, 세제 개혁 등의 다양한 경제 정책을 실행하여 현재의 환율 수준을 유지하자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것의 실제적인 의도는 달러의 가치가 더 이상 하락하지 않고 현상태를 유지하도록 각국이 노력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이루어진 합의였다. 그러나 더이상 세계 경제는 반시장적인 형태의 합의나 정책만으로는 목표들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합의는 외환의 역사에 크게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2022.08.05 - [경제 지표와 이론] - Forex의 역사 이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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